1394년 태조 이성계의 한양 천도 후 경복궁을 조성한다. 그러나 1399년 2대 왕 정종은 다시 개경으로 천도를 한다. 그 후 태종은 다시 한양으로 재천도를 하지만 경복궁으로의 천도가 아니라, 1405년 창덕궁을 창건한다.
『태종실록 8권, 태종 4년 10월 6일 』 " 신도 (新都)도 변고 (變故)가 많았으므로.... 등 왕자의 난, 등으로 경복궁 터가 안 좋은 것을 빌미로 삼아 새로운 궁을 짓는다. 그 후 태종은 세종에게 양위할 때까지 창덕궁에서 기거를 한다.
즉위식, 사신접대, 연회등의 중요행사는 그대로 경복궁을 사용하고, 일상은 창덕궁에서 생활을 한다. 지척에 있는 창경궁은 성종이 할머니 정희왕후와 어머니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궁으로 장희빈의 암투도 창경궁에서 일어났다.
창경궁( 昌慶宮 ) 경춘전 ( 景春殿 )
인수대비는 창경궁( 昌慶宮 ) 경춘전 ( 景春殿 ) 에서 기거했다. 그 후 200년 후 인현왕후가 살았고, 70년 후 사도사제가 살았고, 정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자경전 ( 慈慶殿 )
정조는 즉위후 어머니(혜경궁 홍 씨)를 위해 자경전 ( 慈慶殿 )을 지었다. 이후 자경전은 1873년 고종 10년에 화재로 소실된다. 1911년 자경전터에 일본식 건물 장서각이 설립되어 도서관 및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놀이시설로 변한다. 1909년 11월 1일 창경궁내에 동물원, 식물원이 들어선다. 1911년 4월 26일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일제에 의해 개칭되어 불리다가 1983년 폐쇄된다.
종묘사직 ( 宗廟社稷 )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직 은 토지신과 곡신신을 모신다는 뜻이다.
좌묘우사 (左廟右社) 정궁기준으로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배치하다. 합쳐서 종사라 부르며 종묘사직의 단절은 나라의 멸망을 뜻한다.
태조 이성계는 개성에 조선의 첫 종묘를 조성한다. 한양 천도 후 궁보다 종묘와 사직을 먼저 세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종묘는 선조가 피난에서 돌아와 종묘 복원을 착수한다. 이 종묘는 광해군 때 복원이 완료되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건축물이 된다.
종묘 정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건축물로써 약 101 미터에 이른다.
조선초에는 종묘 신실 7칸을 조성하여 개성에 있던 태조의 4대조를 모신다. 왕조가 이어지면서 후대 국왕의 모실 공간을 증축하는데 같은 모양의 신실을 증축한다.
종묘정전과 창덕궁 사이에 영녕전을 지어 4대가 지나면 영녕전으로 신줏단지를 옮긴다. 원칙적으로 4대가 지나면 영녕전으로 옮겨야 하는데 업적이 뛰어난 왕은 계속 정전에 모시었다. 이를 불천위 제사 ( 不遷位祭祀 ) 라 한다.
종묘정전 (宗廟 正殿)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정전』은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 (宗廟)』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물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과 유교 제례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우리의 역사적 유산인 것이다. 종묘정전은 영녕전과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 `정전 (正殿)` 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써 왕과 왕비의 신위가 모셔짐.
- 단일 건물 중 세계에서 가장 긴 전통 목조 건물로써 길이가 약 100m에 달한다.
- 내부는 `19실 (칸) ` 이 있으며 각 칸에 왕과 왕비 한쌍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 유교 원칙인 불천위 전통에 따라 필요할 때마다 증축되었다.
- 모두 19위(位)의 왕과 왕비가 봉안되어 있다.
- 나머지 왕들은 영녕전 (永寧殿)에 모셔져 있다.
종묘대제 (宗廟大祭)
-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정전에서 거행된다.
- 제례의식은 조선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이어지고 있다.
- 조선의 전통음악인 종묘제례악과 일무 (佾舞) 도 포함된다.
- 일무 (佾舞)는 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악에서 추는 춤이다.
- 종묘정전은 평상시에는 신위가 없는 `위패궤` 형태로 보관되어 있고 제례 때만 신위를 꺼내어진다.
불천위제사 ( 不遷位祭祀 )
4대를 넘긴 신주 (神主)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며 지내는 제사이다.
업적이 많으면 정전에 위폐를 모시고, 그렇지 않으면 그 옆 영녕전 ( 永寧殿 )에 모신다. 후사가 없으면 4대 후 영녕전으로 갈 확률이 많고, 후손이 있으면 정전에 남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정전에는 19개 의 신실이 있다.
영녕전 ( 永寧殿 )
영녕전은 조선 왕실의 종묘에 속한 중요한 제례공간의 하나이며, 영녕전은 종묘의 부속 건물로써 조선왕조의 공신 (功臣 )들과 후손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조선 초기에는 태조의 사대 조상을 모신 사당이었으나, 이후 선대왕 중 종묘 정전에 봉안되지 못한 이들의 신위를 모신곳이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대제와 함께 영녕전 제례도 함께 봉행된다.
영녕전에는 "34위의 신위 ( 왕 16위, 왕비 18위 )가 봉안되어 있다.
※ 특이한 점은 한쪽에 고려시대 공민왕의 신당이 있다. 이 말은 조선은 고려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고려에서 조선의 백성이 된다는 민심을 위로하고 동시에 건국의 명분을 살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이후 현재는 창덕궁 돈하문에서 시작해 북신문을 거쳐 종묘로 이동할 수 있다. 90년 만에 연결된 창덕궁, 창경궁, 종묘 돈화문의 월대를 복원하여 궁궐의 권위를 살리는 의미가 있다.
『세종실록 93권, 세종 23년 7월 12일』창덕궁에 따로 새 길을 내어 종묘에 왕래하는 데에 통하게 하라. 조선시대 내내 사용하다가 일제 강점기 1932년 율곡로가 생기면서 길이 없어졌다. 400년 동안 사용하던 길이 일제에 의해 없어진 것이다.
끊어진 종묘와 궁을 연결하여 지금은 창덕궁에서 바로 종묘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종묘 북쪽 신이 드나드는 문 북신문 (북쪽에 다니는 신의 문)을 복원하면서 지금은 길이 종묘로 바로 갈 수 있게 했다.
조선을 상징하던 종묘, 역사의 힘들었던 우리 문화유산들이 하루빨리 재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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